[하나에어로스페이스] 역대급 3.6조 유상증자, 기회인가 위기인가?
최근 한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단연 하나에어로스페이스의 3조 6천억 원 규모 유상증자 발표입니다. 단일 유상증자 규모로는 한국 역사상 최대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발표 직후 주가는 하루 만에 13% 가까이 급락했습니다.
그동안 상승세를 타고 있던 투자자들은 충격에 빠졌고, 시장에서는 이번 유증의 목적과 타이밍,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다양한 해석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유상증자는 기회일까요, 위기일까요?
1. 왜 지금, 그것도 3.6조?
하나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유상증자 목적을 “글로벌 방산·조선·우주항공 톱티어 기업으로의 도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용처는 ▲시설투자 1.2조 원 ▲타 법인 증권 취득 2.4조 원으로 공시됐습니다.
문제는 ‘지금 유상증자를 해야 했냐’는 점입니다. 2024년 기준 하나에어로스페이스는 이미 영업이익 1.7조, 순이익 2조를 달성했고, 영업현금흐름도 연간 2조 원 수준으로 우량한 재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차입을 통해 조달해도 충분했던 자금”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특히 발표 직전 1조 3천억 원을 들여 그룹사 하나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인수한 직후 유증이 발표되면서, 시장은 "타이밍이 석연찮다"라고 봤습니다. 겉으로는 전략 투자지만, 속으론 자금 메우기 아니냐는 시선도 나왔습니다.
2. 주주와의 소통, 너무 부족했다
이번 유상증자에서 가장 강하게 지적된 부분은 주주와의 사전 소통 부재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5년간 주가가 무려 30배 상승한 종목으로, 국내 주식 시장의 대표 ‘텐배거’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장기 성장 스토리를 믿고 지켜봐 왔고, 회사는 그 신뢰에 부응해 왔습니다.
하지만 유상증자는 갑작스럽게 발표됐고, 대규모 물량이 시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쏟아지면서 단 하루 만에 주가가 13% 이상 빠졌습니다. 게다가 할인율도 15%로 결코 작지 않은 수준이었죠.
만약 이 같은 유상증자가 사전 설명이나 로드맵 공유, 단계적 자금 조달 방식으로 진행됐더라면? 주가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반응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점에서 느닷없는 유증’이라는 인식은 투자자들의 불신을 초래했고, 그에 따른 주가 하락은 너무나 예측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3.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지배구조 시나리오
유상증자 직전에 진행된 하나오션 지분 인수는 단순 투자 그 이상으로 해석됩니다. 그 지분의 매도자는 하나에너지와 하나임팩트였고, 두 회사는 후계자 일가의 지분율이 100%인 곳입니다. 즉, 유상증자 직전에 그룹 내 현금이 이쪽으로 이동한 셈이죠.
하나에너지는 최근 IPO를 공식화하며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 하나에너지가 상장 후 주한화와 합병해 승계 구조를 만든다.
- 혹은 하나에너지가 현금 유입을 바탕으로 주한화 지분을 사들인다.
물론 하나 측은 “지분 인수와 유상증자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사안”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의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옛말처럼, 시기와 모양새가 겹치면서 괜한 의혹이 붙는 모양새입니다.
4. 유상증자는 악재가 아니다, 문제는 방식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유상증자는 성장 의지를 나타내는 긍정 신호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방산·조선·우주항공 같은 장기 투자 산업에서는, 지금과 같은 호황기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방법과 커뮤니케이션이었습니다. 대규모 유상증자는 주주들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따라서 그만큼 더 많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너무 짧았습니다.
과거 한국 주식시장에선 대주주의 자금 회수, 루머성 유증, 주가 고점 유증 후 급락 같은 사례들이 반복됐습니다. 그 트라우마가 하나에어로스페이스에도 투영된 셈입니다. 이번 유증은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닌, 신뢰의 문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5. 마무리하며
하나에어로스페이스는 분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산기업이며, 글로벌 진출을 향한 비전도 확고합니다. 앞으로 더 큰 기업이 되기 위해 자금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숫자만큼 심리도 중요한 곳입니다. ‘왜 지금 이 방식으로 했는가’에 대한 소통 없이 결정된 대형 이벤트는,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은 찬성입니다. 다만 다음번엔, 그 여정에 주주들이 동반자로서 함께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